학교 절반이 자율학교…제주형 자율학교, 20년 만에 ‘재구조화’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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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교육청은 7일 오후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제주형 자율학교의 새로운 방향을 묻다’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뉴스제주 최지희 기자] 9개 학교로 시작한 제주형 자율학교가 20년 만에 101개교까지 늘어나면서 정책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도내 학교의 절반 이상이 자율학교가 됐고 유형도 15개까지 불어났다. 지역과 학교 특색을 살린 교육과정으로 공교육의 다양성을 넓혔다는 평가와 함께 유형 간 경계가 흐려지고 특정 학교로 학생과 교원이 몰리는 현상, 불안정한 재정지원과 행정 부담 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장의 요구도 ‘확대냐 축소냐’라는 숫자의 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자율학교가 일반 학교와 무엇이 다른지, 한 학교의 성과를 제주교육 전체로 어떻게 확산할지, 정책 변화에도 학교가 쌓아온 교육과정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새로운 과제로 제시됐다.
제주도교육청은 7일 오후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제주형 자율학교의 새로운 방향을 묻다’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교원과 학부모, 교육전문직원 등 200명 안팎이 참석해 지정 규모와 유형, 예산, 가산점, 학생 쏠림, 성과 확산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고의숙 제주도교육감은 이날 “취임 후 가장 많은 보고와 협의를 진행한 사안이 제주형 자율학교였다”고 밝혔다. 예상보다 현장의 요구와 이해관계, 구조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원점에서부터 모든 것을 열어놓고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9개교→101개교…‘자율’이 절반을 넘었다
제주형 자율학교는 2007년 ‘아이좋은학교’ 9개교에서 출발했다.
지난 2015년 다혼디배움학교, 2021년 IB학교, 2022년 건강생태학교가 추가됐고 2023년 이후 놀이학교와 디지털학교 등을 비롯한 유형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2025년에도 발명학교와 미래기술인재학교 등 새로운 유형이 더해지면서 현재 15개 유형이 운영되고 있다.
학교 수 증가세도 가파르다. 지난 2021년 56개교에서 2022년 65개교, 2023년 73개교, 2024년 81개교, 2025년 93개교를 거쳐 올해 101개교가 됐다.
도내 전체 학교 188개교 가운데 53.7%가 제주형 자율학교다.
초등학교는 68.1%가 자율학교이며 지역별로는 제주시 초등학교의 52%, 서귀포시 초등학교의 86%에 달한다. 중학교는 40%, 고등학교는 약 20%다.
학교 혁신을 위한 ‘예외적 모델’로 출발했던 자율학교가 어느덧 제주 학교의 절반을 차지하는 구조가 된 셈이다.
토론에서는 이런 양적 확대가 제주형 자율학교의 정체성을 오히려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김명희 신산초등학교 교장은 제주형 자율학교가 일반 학교와 구별되는 선도 모델을 지향하는 것인지, 결국 모든 학교로 확산할 보편적인 학교혁신 모델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몇 개 학교를 지정할 것인가에 앞서 자율학교의 존재 이유와 제주교육 전체에서 맡을 역할에 대한 합의가 먼저”라고 주문했다.
■ 15개 유형, 얼마나 다른가
학교 수뿐만 아니라 15개까지 늘어난 유형도 재구조화 대상으로 지목됐다.
고정여 대정고등학교 교사는 마을생태학교와 제주문화학교, 건강생태학교가 실제 교육과정에서 얼마나 다른지, 디지털학교와 미래역량학교·발명학교·미래기술인재학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글로벌역량학교와 세계시민학교 역시 목표와 교육내용이 상당 부분 겹쳐 유형 간 경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15개 유형, 101개 학교를 교육청의 소수 담당 인력이 각각의 운영 목적에 맞게 지원하고 점검하는 데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장 설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장정훈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공개한 지난 7월 조사에서 자율학교 유형을 ‘통합·단순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45.5%로 ‘다양화해야 한다’는 응답 20.2%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지정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도 44.1%로 확대 의견 15.5%의 약 3배였다.
다만 학교 수를 줄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자율학교의 성과가 특정 학교에 머물지 않고 일반 학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별 거점학교와 협력학교를 묶어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사례를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결국 15개 유형을 유지할 것인지 몇 개 유형으로 묶을 것인지보다 무엇을 제주형 자율학교만의 핵심 가치로 남길 것인가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 학교 선택권이 만든 ‘쏠림’
자율학교가 확대되면서 학생의 학교 선택권과 지역 교육의 균형이 충돌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IB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표선지역이다.
고명희 표선중학교 교장은 표선중 학생 수가 지난 2020년 270명에서 올해 646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올해 신입생 224명 가운데 141명, 약 63%는 IB 교육과정을 이수한 초등학교 출신이다. 통학구역 밖에서 들어온 신입생 비율도 36.6%로 신입생 3명 중 1명 이상이 외부 지역에서 진학했다.
특정 학교의 인기는 인근 학교의 학생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
신산초의 경우 지난해 6학년 17명 가운데 신산중을 선택한 학생은 2명에 그쳤고 나머지 15명은 표선중 등 다른 중학교로 진학한 사례가 제시됐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주어진 학교 선택권이 특정 학교의 쏠림으로 이어지면서 소규모학교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유토론에서도 IB학교라고 해서 모든 소규모학교의 학생 수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며 학생 쏠림 못지않게 교원 쏠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자율학교 정책을 개별 학교 지원에서 지역 단위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학생 배치와 진학, 인근 학교와의 관계까지 함께 살피고 한 학교의 성장이 주변 학교의 쇠퇴로 이어지지 않는 교육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 4년 지정인데 예산은 해마다 ‘출렁’
안정적인 재정지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제주형 자율학교는 기본적으로 4년 단위로 지정되지만 운영비의 재원과 규모는 해마다 달라져 학교가 중장기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023년부터 도교육청 통합사업비로 운영비가 지원됐지만 2024년 10%, 2025년 30% 감액됐다. 올해는 자체 재원만으로 지원이 여의치 않으면서 교육부 특별교부금 31억원가량을 확보해 지원했다.
예산 규모는 늘었지만 특별교부금 특성상 사용 범위와 절차에 제약이 뒤따르면서 현장에서는 “예산은 있지만 쓰기가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정우 제주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운영비 총액이 지난 2023년 19억2000만 원, 2025년 19억3000만 원 수준에서 올해 31억1000만 원으로 증가했지만 특별교부금 의존도가 높아진 구조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4년 동안 자율학교로 지정받아도 사실상 1년 단위로 예산을 계획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장기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학교가 예산 집행보다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교육청 자체 재원과 특별교부금을 병행하는 다년도 지원체계를 만들고 목적사업비 중심의 예산을 보다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현재 일부 운영비는 신규 지정 학교 4000만 원, 건강생태학교 2000만 원, IB학교 5000만 원 등 유형별로 지원되고 있지만 목적사업비의 집행과 정산 부담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자율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교육과정뿐 아니라 예산 사용에서도 학교의 자율성을 넓혀야 한다는 주문이다.
■ 가산점 최대 쟁점…“없애자”보다 “어떻게 바꿀까”
교원 승진 가산점은 이날 가장 의견이 엇갈린 사안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일부 제주형 자율학교 근무 교원에게는 도 지정 연구학교 근무 선택가산점으로 월 0.01점이 부여된다. 기간제와 비교과 교사를 포함한 근무 교원 전체가 대상이다.
박혜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 서부지회장은 “학교 혁신이 승진 가산점이라는 외적 동기보다 학교 구성원의 자발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일정한 유예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주교총은 가산점을 전제로 자율학교 근무를 선택한 교원들의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며 급격한 폐지에 반대했다.
다만 현행처럼 근무 교원 전체에게 일괄적으로 주기보다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에 실제 기여한 교원을 중심으로 부여하는 방식 등 제도 개선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주교총 측은 자유토론 과정에서 조사 결과 응답자의 60% 이상이 가산점을 ‘유지하되 다듬는 방향’을 택했고 축소·폐지 의견은 24%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제도를 손보더라도 이미 취득한 가산점과 현재 지정 기간은 보호하고 충분한 사전예고 기간을 둬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 “좋은 학교 하나”에서 “제주교육 전체”로
토론자들의 입장은 쟁점마다 달랐지만 제주형 자율학교가 지난 20년간 쌓은 교육과정과 학교문화의 성과를 이어가야 한다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예래초 학부모는 저학년부터 마을의 자연과 문화를 탐구하고 고학년에서는 지역 문제를 찾아 해결방안을 행정기관에 제안하는 교육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좋은 교육이 특정 학교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학교와 공유되고 교직원이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연구 여건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혜령 지회장은 자율학교에서 개발한 교육과정과 수업, 학교 운영 경험을 다른 학교와 공유하고 연구년제와 교육정책 연구, 교원 연수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제안했다.
몇 차례의 행사나 프로그램 실적보다 학교 교육과정과 문화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하는 연구도 필요하다고 봤다.
20년 가까이 쌓인 자율학교의 성과를 개별 학교의 브랜드로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 공교육 전체의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재구조화의 또 다른 축인 셈이다.
■ 77.9% “재구조화”…문제는 속도와 방향
제주형 자율학교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데에는 현장의 공감대도 상당했다.
제주교총이 지난 7월 교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7.9%는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81.7%는 개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바꾸지 말자’보다는 ‘바꾸되 급격하게 흔들지 말자’는 요구에 가깝다.
실제 이날 자유토론에서는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자율학교 정책의 이름과 방향이 달라지면서 학교가 새로운 사업계획과 교육과정을 다시 준비해야 했다는 현장의 피로감도 나왔다.
지정기간 만료를 앞둔 학교에서는 재지정 여부조차 알 수 없어 향후 교육과정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어렵다는 호소도 있었다.
사전 질문에서도 재지정과 기간 연장, 학교 특색과목의 지속 여부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다. 접수된 33건 가운데 특색과목을 지속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12건이었다.
그러나 이날 도교육청은 구체적인 개편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
담당자는 토론회 이후 현장의 의견을 토대로 지정 방향 등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단계에서는 확정된 안을 내놓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러 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학교 상황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주형 자율학교가 지난 20년 동안 만들어 온 성과를 지우는 것이 재구조화의 목적일 수는 없다.
동시에 도내 학교 절반 이상이 자율학교가 된 상황에서 학교 수와 유형을 계속 늘리는 것만으로 학교 혁신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늘릴 것인가, 줄일 것인가’라는 선택보다 ‘분명한 기준’이다.
제주형 자율학교만의 역할은 무엇인지, 15개 유형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학생과 교원의 쏠림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4년간 교육과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재정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한 학교에서 검증된 성과를 일반 학교까지 어떻게 확산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제주형 자율학교가 다시 설계돼야 한다면 출발점은 숫자가 아니라 그 질문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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